대한민국의 수도-서울
서울의 역사
서울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선사시대이다. 선사시대란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시대로 구석기, 신석기 시대를 말한다. 한강 유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로 강남구 삼성동 50번지 일대에서 구석기 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 본격적으로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며 살았던 것은 신석기 시대로 볼 수 있는데, 신석기 시대 유적이 서울 곳곳에서 발굴된 것으로 미루어볼 수 있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 강동구 암사동 유적이다.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이어져 온 서울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과 함께 식민지 수도 경성에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 38선을 경계로 미국군과 소련군이 각각 진주하게 되고 두 연합군이 신탁통치안을 제안하면서 반대하는 우파와 찬성하는 좌파 간의 대립이 격렬해졌다. 대표적인 정치지도자로는 이승만과 김구를 들 수 있다. 이화장에서 기거하던 이승만은 1948년 7월 20일 제헌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민족운동가 김구는 경교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분단 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통일 정부 수립에 열정을 불살랐지만 안두희에 의해 시해되는 불운을 겪는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서울은 다시 폐허가 되고 만다. 전쟁 동안 150만 서울 시민 중 110만 명 이상이 서울을 떠났다가 돌아왔을 정도로 서울의 피해는 막심했다. 1953년 9월 전쟁이 끝난 후에야 새로운 도시 건설에 주력할 수 있었고, 제분·제당·방적 등 원조 물자를 이용한 제조업이 제일 먼저 재생되었다. 경성시에서 서울시로 명칭이 공식적으로 바뀐 것은 미군정이 서울시 헌장을 발표하고 한 달이 지난 1946년 9월 28일이며 1949년에는 서울특별시로 전환되고 1962년부터 서울시는 국무총리 직속의 행정기구가 된다. 초대 정권인 이승만 정권은 시간이 지날수록 독재정치로 변질하였고,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를 저지른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과 시민들에게 경찰이 총격을 가하면서 시민의 분노가 전국적으로 폭발하였고, 4월 26일 이승만은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 하와이로 망명하게 된다. 부정선거와 경찰의 폭력에 반발하면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한 4·19혁명의 성공으로 대한민국에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
서울의 발전
1961년 박정희 정부 이후 70년대 말까지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루며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이와 함께 서울의 면적도 계속 확장되는데 1963년 양주군·광주군·시흥군·김포군·부천군 일부가 서울시로 편입되었고, 1973년 약 605제곱킬로미터로 확장된다. 1974년 8월 15일 서울에 지하철이 처음 등장하였는데 서울-수원, 서울-인천, 용산-성북, 서울-청량리 구간이었다. 총길이는 98.7킬로미터에 달했다. 이것이 지금 말하는 서울 지하철 1호선에 해당한다. 농촌지역이었던 강남은 1963년 서울시에 편입되었고 강남개발의 필요성에 따라 1969년 말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다. 1970년대 서울시정의 최대과제는 ‘강북인구집중억제’ 정책이었고 이에 따라 영동지구 개발이 가속화, 강남개발 촉진이 진행되었다. 강북에 있던 유서 깊은 고등학교를 대부분 강남으로 이전시켰는데 그 결과 많은 사람이 강남으로 이전하였고 강남이 교육의 메카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각종 세계대회 개최와 문화의 발전
서울과 대한민국의 발전은 ’86서울아시안게임 개최, ’88서울올림픽 개최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대회를 성황리에 마무리했으며 1970년대 이후 고도성장으로 격상된 지위를 전 세계에 각인 시킬 수 있었다. 특히 88서울올림픽은 서울과 일본의 나고야가 경합을 벌인 끝에 52:27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개최국으로 선정된 것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2002년 한국과 일본이 제12회 월드컵 경기를 공동으로 개최하면서 전 세계의 시선은 다시 서울로 쏠리게 된다. 상대적으로 축구 약소국이었던 한국은 세계 강호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이기고 4강에 진출하였다. 이는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고 붉은악마 응원단의 열광적인 응원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응원문화로 세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서울의 변화를 크게 보여주는 것은 청계천이다. 1760년에 원형이 완성된 청계천은 남촌과 북촌을 구분하는 경계선이자 서민들의 생활 터전이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는 대륙 침략 수송로로 활용하기 위해 세종로사거리에서 무교동까지 청계천을 복개했고, 광복과 6·25 등의 혼란을 거치면서 청계천은 방치되었다. 방치된 청계천에는 쓰레기와 오물이 청계천에 쌓여갔고 이에 서울시는 복개를 결정하고 광교에서 신답철교까지 순차적인 복개를 진행했다. 그러나 서울이 더욱 발전하자 개발과 성장보다는 문화와 환경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되었고 2003년 7월부터 복개된 도로를 걷어내고 청계천을 복원하는 공사를 진행한 끝에 2005년 10월 1일 청계천이 정식 복원되었다. 현 21세기에 도시 간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동북아 중심도시가 되기 위해 금융, 비즈니스, IT, 문화, 패션 등을 전략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환경의 지속적인 변화도 계속해온 결과 현재 서울에는 넓은 공원과 숲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보여지며 이제는 세계 일류도시가 되는 것을 비전으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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